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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철학사
등록자 김용우 등록일자 2015.10.11
IP 123.214.x.245 조회수 2465

[한겨레]
원효에서 함석헌·장일순까지
한국 지성사 거장 35명 불러내 주요 행적과 저술,
일화들 친근한 구어체로 강의식 진행
 
한국 철학사
전호근 지음/메멘토·
3만8000원
 
 
전호근 경희대 교수는 1950년대 말까지 ‘한국 철학’은 그 말 자체가 성립하는지 여부조차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고 <한국 철학사>에 썼다. 중국, 일본 등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비서구권에도 철학(필로소피)이 있다는 건 1946년에 버트런드 러셀이 ‘철학사’가 아니라 <서양 철학사>라는 제목의 책을 낸 뒤에야 비로소 인정받았단다.
 
전 교수는 동아시아 철학을 화석화된 유물 정도로 취급하며 타자화한 막스 베버 등 영미권 학자들 언설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장자>에 나오는 소 잡는 백정의 신목(神目)에 따른 리드미컬한 칼놀림(奏刀)이나, 피아니스트의 손을 의식하지 않는 신들린 타건(keying)은 전혀 다른 것이 아니다. 대관절 유학의 수기(修己)나 독일어의 빌둥(bildung), 영어의 컬티베이션(cultivation)이 같은 것이 아니면 무엇이며, 하나가 곧 전체라는 화엄의 종지가 나사렛 예수가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나선 것과 동일한 통찰의 결과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 이뿐만 아니라, 불과 얼마 전까지 한국 철학, 특히 자신의 전공인 조선 성리학에 대한 한국 지성계와 대중들의 평가도 가혹했다고 얘기한다. “당대를 풍미했던 마르크시즘의 유물사관에 따라 봉건적 관념론으로 폄훼된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민주화의 열기가 가득했던 시대에 성리학은 그저 체제수호를 위한 지배 이데올로기로 적대시되는가 하면, 실용을 추구하는 풍토 아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공리공담의 학문으로 매도되더니, 급기야 나라를 망친 주범으로 지목되기에 이르렀다.” 말하자면 그의 <한국 철학사>는 그런 규정이나 생각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전 교수는 “나는 한국 철학이 아직 이 땅에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 학문적 의미뿐만 아니라 “원효 이래 1300년에 걸친 한국 철학의 거장들이 추구하고 실천했던 삶의 문법이 아직도 한국인의 의식 저변에 깔려 있을 뿐 아니라 우리의 삶 곳곳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가 구체적 방법으로 채용한 것은 역사적 사실들을 시대순으로 배열한 철학적 연대기 작성이 아니라, 원효 이래 유영모·함석헌·장일순에 이르기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한국 지성사의 거장들” 35명을 차례차례 불러내 그들의 생각과 삶의 궤적을 살피고 평가하는 방식이다. 전 교수는 이 책에서 무위당 장일순을 처음으로 철학자로서 조명할 뿐 아니라 최제우까지의 ‘전통시기 철학자들’ 시대 이후 펼쳐지는 한국 현대철학 제1세대의 선두주자로 한국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신남철과 박치우, 그리고 고구려 을지문덕과 백제 장수 막고해 등을 도교 전통과 관련지어 등장시킨다.
 
이 책 등장인물들의 스펙트럼은 유학자들 비중이 크긴 해도 이처럼 매우 다양할 뿐 아니라, 원효와 의상, 균여와 의천, 정몽주와 정도전, 이황과 기대승·조식·이이, 박지원과 정약용 등 서로 대립각을 세웠거나 일종의 라이벌 관계로 거론되는 이들을 비교해 볼 수 있게 짜 놓아 재미와 이해도를 높였다. 친근한 구어체의 강의식 진행에, 등장인물들의 주요 행적과 저술 등을 쉬운 현대어로 번역하고, 흥미로운 일화나 사례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등 지은이는 철학서니까 어렵고 딱딱할 것이라는 선입관을 깨기 위해 다양한 전략·전술을 구사한다. 어쩌면 이 귀에 쏙쏙 들어오게 만드는 이야기 전개방식이야말로 <한국 철학사>의 최대 장점일지도 모르겠다.
 
예컨대 화합·통합의 논리인 원효의 화쟁(和諍)론을 설명하면서 <대승기신론소> 중의 구절들도 옮겨 놓지만, <마태복음> 20장의 포도원 얘기, 정규직과 비정규직 얘기를 거쳐 헝가리 할머니 얘기(차병직의 <상식의 힘>에서 재인용) 등도 동원한다. “사과 장수 할머니가 사과를 팔고 있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과를 사 가는데 그 할머니가 하나는 좋은 것, 하나는 나쁜 것 이런 식으로 섞어서 팔아요. 한국 사람이 ‘돈을 더 줄 테니 좋은 것만 달라’고 했더니 할머니가 ‘너한테는 안 팔아’ 했답니다. (…) 할머니 얘기는, 먼저 온 사람이 좋은 것 다 가져가면 뒤에 온 사람은 뭘 가지고 가느냐는 거고, 한국 사람은 아침에 부지런히 일어났으니까 좋은 걸 가져갈 자격이 있다, 이렇게 생각하죠. 그러니까 한국인은 (…) 피곤하게 삽니다. 평생 죽어라 일만 하면서 사는 거예요. 늦게 오는 사람은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죠. 정의로운 사회가 맞나요?” 화쟁론은 그래야 쉽게 다가온다.
 
 
“내가 더 많이 차지하려고 하면 원효의 화쟁론은 의미가 없어요.” 전 교수는 주자학(성리학)의 이(理)·기(氣), 실학 개념, 불교의 교(敎)·선(禪)도, 장일순 등의 한국 철학사 등장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
 
한승동 선임기자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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